오후 6시 정각, 초침과 분침이 일치하기 무섭게 서로를 지나쳐간다. 시계를 향해있던 초점이 흐트러진다. 검은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린다. 어느 곳도 향하지 못하는 시선이 방황한다. 방황의 궤적은 점차 커진다. 덜덜 떨리는 눈꺼풀이 증명한다. 끝내 시선을 아래로 떨구자 외면의 대가로 새 국면을 맞이한다. 나는 그 떨림이 사지의 말단까지 뻗쳐 아무것도 할 수 ...
논리는 비논리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시인한 것도 문제였다만, 이길 전의조차 없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아니, 애초에 그의 존재 자체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기 때문에 그와 관련한 분야에 논리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를 내어주건 그의 진한 키스나 교태로운 몸짓 몇 번이면 우리의 기브앤 테이크는 성사됐다. 진짜 문제는 다...
우리에게는 불문율이 있다. 기필코 정해진 선을 넘지 않는 것. 그 선을 누가, 어디까지 그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어렴풋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은 너와 내가 '우리'로 있게 하는 최후의 보루, 마지노선이었다. - [야, 뭐 해.] 개구진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면 아무 생각 없이 받아쥐었던 전화통을 귓가에서 떨어...
봉안당의 후미진 곳에 놓인 사진 속 여자는 그 앞에 놓인 하얀 국화와 닮았다. 어머니, 소리 내 부른 적이 몇 번이나 있으려나는 몰라도 어미의 음성은 쉴새 없이 머릿속을 메아리쳤다. 'X, X.' 다정히도 부르는 이름은 썩 따뜻해서, 누구건 행복하기만 한 사람으로 오인하기 쉬웠다. 차게 식은 몸이 더 이상 입 한 번 뻥긋하지 못하게 될 순간에도 어미의 몸은...
인적 드문 이곳을 둘러보기 위해 처음 왔던 날도 그랬다. 한산하기 짝이 없는 주택가의 끝자락, 그늘을 등지고 선 저택은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안료를 들이부은 듯 선명한 채도의 꽃들과 여름 햇살을 함뿍 받아 빛나는 정원은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순간마저 영화의 명장면마냥 아름답다. 높이 걸린 화분에서부터 담장을 따라 발을 드리운 푸른 아이비와 러브체인, 넝...
7살이 되던 해, 펜션 같던 대저택의 1층에서 기르던 자그마한 포메라니안이 죽었다. 평소처럼 앙앙거리며 짖어대던 대신 발치에서 간신히 할딱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하얀 털에 작은 입, 까만 눈동자는 썩 귀여워 보는 맛이 있었는데. 아쉬움에 사지가 뒤틀린 강아지를 응시했다. 점차 숨이 가늘어지고 부러진 다리와 몸의 떨림이 잦아들 때까지, 마침내 미동조차 ...
잘 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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