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요즘 꿈에 자주 나온다. 역시 기억은 오래되면 알아서 미화되는구나 싶어. 나는 네가 그리운 걸까. 나는 널 다 용서한 걸까. 사실 답은 알고 있어. 하지만, 알잖아 나는 끝끝내 모르고 싶어 해서 또다시 모르는 척 외면하는 놈인걸. 개 버릇을 남 주지. 별개로 그때 나는 네가 진짜로 행복하길 바랐어. 이렇게 돼버린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너는 어때. 행...
"X 회장님도 그랬지 않나요. 쪽팔리게 신입한테 까일 건 또 뭡니까." "하하. A 프로." 술잔이 팔 안으로 굽다 말고 허공에 떴다. 거나하게 취한 인사가 제 주둥아리 하나 단속을 못 해 나불거린 말이었으나 술잔을 집던 손은 진작 술잔을 주둥이 째 쥐었다. 안에 술이 들었건 말았건 한 손에 움켜쥐고 맞은 편 사내의 낯짝에 유리잔을 집어 던졌다. "네 커리...
야. 안녕. 나야. 잘 있냐. 나는 잘 있다. 너 없이도 잘 먹고, 잘 자고, 또 일도 잘한다. 나 실은, 네가 약속한 날에, 너 보러 갔었다. 너는 벽 하나 사이에 두면 내 목소리도 못 알아들으면서 네가 한 말은 쏙 빼먹고 내 얘길 하더라. 근데, 야. 나는 배알이라곤 나가 뒈졌는가 봐. 그런 네가 뭐가 좋다고 나는 아직도 네가 보고 싶다. 내 일평생 너...
주먹 쥔 손을 내밀면 자연스럽게 그 아래로 가느다란 손이 마중을 나갔다. 손바닥에 떨어진 열쇠는 낡음으로써 그 손에 오래 있던 것임을 증명했다. 올려다보는 눈이 내려다보는 눈과 마주친다. 더는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없잖아. 그래서도 안 되니까, 네가. 손가락이 홑이불처럼 포개어져 가랑가랑한 열쇠의 숨을 덮었다. 거두어가는 순간마저 조심스럽다. ……다음에, ...
인간은 독자적 감정이 유사할 때 감정이 공유된다고 착각한다. 발인이 동일한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느꼈을 뿐이다. 인즉 사무치는 감상은 다 알량한 것이 된다. 네 것이 그러했고 내 것이 그러했으니 사무침에도 살아갈 것이고 살아가다 보면 사무치지 않는 날이 늘게 된다. 혹자는 무디어진 것이라고는 하나 무딤은 망각의 동의어가 되지 못한다. 닳은 것이 아니라 다한...
투둑. 생살이 찢기는 소리 내며 긴 바늘이 찢어진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숨을 잠깐 참았을 뿐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옆에 선 놈이 더 야단이었다. 으, 하고 찡그리며 군소리까지 했다. 아플 것도 안 아프다 하는 놈 하나, 남이 아플 것도 지가 아파하는 놈 하나. 걔네가 그랬다. 아플 것도 안 아프다 하는 놈이 죽을병 걸려 숨만 색색 내쉴 때 그랬다. 야...
연락이 끊긴 지 일주일째에는 완전히 심각해졌다. 언제, 어디서부터, 무엇이 문제였을까. 꺼멓게 죽은 휴대폰 화면을 한참 노려보다 그 위로 푹 엎어져 팔 안으로 휴대폰을 품는다. 식별조차 할 수 없는 암흑 속에 눈 뜨고 코끝이 닿을 듯한 휴대폰을 응시했다. 몇 번 끔뻑거리던 눈을 이내 완전히 감았다. "야, 뭐해." 툭 건드리는 데도 꿈쩍하지를 않고 휴대폰만...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하얀 접시 위로 미끄러지는 나이프에는 피가 묻어있다. 가지런히 정리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자리를 일어서는 그를 응시하다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반찬 투정이야?" 그가 걸음을 멈춘다.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응." 하얀 천장, 하얀 벽, 하얀 등, 하얀 가구, 하얀 침구, 하얀, 하얀……. 툴툴 소리내 ...
불과 삼 주 전의 주주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A그룹 X' 회장은 주총 이틀 전, 삼 년 내 이사진 변동이 없을 것으로 통보했던 말을 번복했다. 이사회는 크게 반발했으나 끝내 주요 계열사의 이사직을 맡은 최 이사가 제물로 지목되었고, 최 이사의 해임 제청안이 가결되었다. 상심한 최 이사가 테이블에 고개 처박고 있을 시점, 회장會場의 문이 열렸다. 머리를 밝...
고양이는 죽은 쥐를 물었다. 한 줌 채 되지 않는 고깃덩이가 쓰이지 못해 날 선 이빨에 찢겨 갈라지자 시뻘건 속살 사이 쥐새끼의 야물지 못한 뼈가 부러져 튀어나와 포식자의 입을 해쳤다. 사체 된 순간에도 피식자로서의 최선을 다한 꼴이었으나 굶주려 아랑곳하지 않는 고양이는 자신의 피마저 달게 마셨다. 발톱을 드러내 꼬리를 짓밟고 몸통을 물어뜯는다. 살가죽 찢...
잘 짖음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